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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드먼드 머스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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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편집]
미국의 정치인. 메인주 주지사, 상원의원 그리고 국무장관을 역임했다.
2. 생애[편집]
성에서 알 수 있듯이 폴란드계 미국인이며, 폴란드 이민자의 아들로 태어나 1939년 코넬 대학교 법학과를 석사로 졸업하였다. 1942년 제2차 세계 대전이 터지자, 태평양 전쟁에서 해군 중위로 복무한 바 있다.
1940년부터 1942년까지 법조인으로 일했고, 1945년 종전으로 다시 고향에 돌아온 이후에는 정치에 관심을 뒀다. 1946년 민주당에 입당했다. 1954년 메인주 주지사로 출마했으며 모두의 예상을 꺾고 현직 주지사였던 버턴 크로스(Burton M. Cross)를 압도적인 표차로 꺾고 당선되었다. 이후 1956년 주지사 선거에서 연임되었다. 1958년에는 메인주 상원의원에 출마해 압도적인 표차로 당선된다.
1964년에 재선되었고 초기에는 도시 복리 문제를 적극적으로 제기하면서 전국적인 인지도를 얻었다. 또 베트남 전쟁에 일찍이 반대하여 젊은이들에게도 높은 인기를 구가하였다. 이 기세를 몰아 1968년 미국 대통령 선거에서 부통령으로 지명되었지만, 종이 한장 차이로 리처드 닉슨에게 패하여 결국 부통령이 되지는 못하였다.
1972년 미국 대통령 선거에서 유력한 후보가 되었고 몇몇 조사에서는 닉슨을 꺾는다는 결과도 나왔다. 그러나 여러가지 논란들과, 닉슨의 워터게이트 사건을 통한 농간[1] 으로 지지율이 폭락하면서 경선에서 참패했고 이후에는 다시 상원의원으로 돌아가 1980년까지 상원의원을 지내게 된다.
1980년 독수리 발톱 작전의 실패에 대한 책임을 지고 사임한 사이러스 밴스(Cyrus R. Vance)의 후임으로 국무장관이 되었으나 그해 11월의 대통령 선거에서 승리한 레이건이 이듬해 1월에 취임하며 자연스럽게 국무장관직에서 물러났으며, 이후에는 이란 콘트라 사건 청문회에서 활약하는 등 법조인 겸 외교관으로 여생을 보냈다.
1996년, 심근 경색으로 사망했고 알링턴 국립묘지에 묻혔다.